[전문가 기고] 에너지경제연구원 오현영 부연구위원 -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 방식의 한계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개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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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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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재생에너지 조달 방식의 한계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개선 과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재생에너지정책연구실

오현영 부연구위원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목표와 지속가능성 요구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RE100 캠페인에 참여해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무역 환경에서도 저탄소 제품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우리 기업들 역시 재생에너지 조달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는 수단과 제도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 기업들이 직면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주요국 재생에너지 지원정책 변화

재생에너지 보급 초기 단계에서 많은 국가들은 고정가격 지원제도인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하여 시장 형성과 기술보급을 촉진했다. FiT 제도는 재생에너지 설비에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여 급격한 설비 확대를 이끌었으나, 시장이 성숙되고 발전단가가 하락함에 따라 비용 부담과 시장 왜곡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장연동형 지원제도로의 전환이 글로벌 추세로 부각되었다. 독일도 과거 FiT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경쟁입찰 방식의 경매제로 전환하여 비용 효율성을 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이 발전사업자와 직접 거래하는 PPA(Power Purchase Agreement)가 보완적 해결책으로 부상한 점은 시장의 적응력을 보여준다. 일본 역시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급진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폈고, 초기에는 대규모 FiT로 설비를 보급하다가 최근에는 발전차액프리미엄(FiP)과 경매제도를 도입하여 시장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와 국산 기술개발, 지역 사회와의 통합 등을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국들의 경험은 재생에너지 정책 목표가 단순히 양적 확대에서 이제 비용효율, 시장통합, 시스템 안정성 등 질적 목표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중요한 추세는 장기 계약형 지원정책의 도입이다. 영국은 정부차액계약(CfD)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발전사업자에게는 경쟁입찰로 선정된 낙찰 가격과 도매가격의 차액을 정산해 주어 수익을 안정시키고, 정부에는 한정된 재정으로 최대의 보급 효과를 내는 체계를 구축했다. CfD는 시장 가격이 기준보다 낮을 때 보전해주고 높을 때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시장연동형 지원으로써, 대규모 풍력 등 자본집약적 프로젝트의 투자 위험을 완화하여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국에서는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한 프로젝트나 CfD에서 탈락한 사업을 기업 PPA로 추진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CfD PPA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CfD로 기본 수익을 확보한 발전사업자는 CfD 범위 밖의 잉여 발전량을 기업과 PPA로 계약해 수익을 다각화하고, 기업은 장기 PPA를 통해 시장가격 변동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 이처럼 CfD PPA가 병행되면서 영국 재생에너지 시장은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세액공제제도와 주() 단위의 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결합한 다층적 정책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정책 지원은 기업 PPA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프로젝트 공급을 증가시켜,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PPA 시장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아시아 지역은 전력시장 구조 차이와 제도적 한계로 북미·유럽 대비 기업 PPA 활성화가 더디고 여전히 녹색요금제와 같은 간접 조달방식에 크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국내 RE100 이행수단의 구조적 한계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조달 수단은사업장 내 설비를 통한 자가발전, △발전사업자와의 전력구매계약(PPA), △한전을 통한 녹색프리미엄 요금제 가입,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력망 자체가 녹색전력으로 구성된 경우의 기본공급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실제 이행에서는 이 중 녹색프리미엄과 분리형 REC 구매에 편중되는 구조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 RE100 참여 기업들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고 비교적 손쉽게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정받을 수 있는 녹색프리미엄에 주로 의존하고, 그 다음으로 기존 발전설비로부터 발급된 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방식에 치중하고 있다. 국내 RE100 사용량의 상당 부분이 이 두 수단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자가 발전이나 직접 PPA와 같은 방식의 비중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는 재생에너지 추가성(additionality)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녹색프리미엄은 한전이 기존 전력에 재생에너지 속성을 붙여 판매하고 그 대가로 프리미엄 비용을 부과하는 형태이며, 분리형 REC 구매는 이미 RPS 의무이행을 통해 생산된 재생에너지의 인증서를 기업이 사오는 방식이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은 인정받을 수 있지만, 새로운 재생에너지 설비를 증설하거나 추가 생산을 유도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추가성 부족은 기업의 RE100 이행이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까지는 국제 RE100 이니셔티브에서 녹색요금제나 기존 REC 구매도 이행수단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추가성이 높고 녹색가치에 대한 신뢰성이 담보된 조달 수단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RE100 참여기업들의 노력과 투자가 실제로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으로 연결되어 국가 탄소중립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민간 PPA 확산을 위한 제도적 환경 미비

RE100 이행수단 가운데 기업들이 특히 도입을 희망하는 전력구매계약(PPA)은 재생에너지 추가성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력 조달을 가능케 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업 PPA 확산을 가로막는 여러 제도적 제약이 존재한다. 첫째, 기존 RPS 제도와의 경합 문제가 PPA 확산을 저해한다.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하나의 발전설비에 대해 RPS 의무이행용으로 전력을 판매하거나 RE100 기업과 PPA를 체결하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 PPA에 투입된 발전량은 RPS 이행실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반대로 RPS에 공급된 전력은 기업이 RE100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배타적 구조에서 신규 재생에너지 공급이 제한된 상황까지 더해져, 발전사업자는 굳이 PPA를 택할 유인이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RPS 고정가격입찰이나 의무구매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수익이 있기 때문에, 기업과 PPA를 맺으려면 RPS 시장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받아야만 계약에 응하게 된다. 실제로 기업 PPA 계약 가격은 RPS 판매단가를 기준으로 그 이상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PPA 전력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RPS 의무이행 시장과 RE100 자발적 시장이 경쟁하면서 재생에너지 전력의 희소성만 높아지고, 기업들의 조달비용 부담은 증가하는 구조적 문제가 나타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재생에너지에 대해 이중의 경쟁을 해야 하는 셈이고, 국가적으로 보아도 한정된 재생에너지 물량을 둘러싼 비효율이 발생한다.


둘째, 추가 비용 부담과 인프라 문제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기업이 PPA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경우, 계약된 전력가격 이외에 각종 부대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비용 구조는 재생에너지 조달단가를 더욱 높여 PPA의 경제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반면 녹색프리미엄 요금제의 경우 한전이 이러한 비용을 일괄적으로 산정하여 제시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계산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런 부대 비용 문제를 해소하여 직접 PPA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설비의 확대로 인한 계통접속 병목 현상도 기업 PPA 활성화의 보이지 않는 장애요인이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송전망 용량 부족으로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인허가와 접속이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들이 PPA를 통해 조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재생에너지 전력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는 위험을 낳는다. 따라서 송·배전망 확충 및 현대화, 접속 우선권 부여 등 인프라적 지원도 병행되어야 민간 PPA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지원정책 개선 방향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선진국들의 정책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국가들이 FiT 중심의 보조금 정책에서 시장 기반의 장기계약 지원정책으로 옮겨간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특히 Feed-in-Premium(FiP)이나 Contracts for Difference(CfD)와 같은 제도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장기고정수입을 보장하면서도 시장 가격 신호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비용 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향후 재생에너지 지원제도를 설계할 때 경쟁입찰형 FiP/CfD 모델을 고려해볼 수 있다. 예컨대, 일정 규모 이상의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해 경쟁입찰을 통해 프리미엄이나 기준가격을 설정하고, 이를 정부나 공적기금이 지원하되 차액은 정산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발전사업자는 금융조달이 용이해져 신규 투자에 나설 유인이 커지고, 경매를 통한 가격 인하 효과로 기업들은 더 저렴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고정가격 지원을 축소하는 대신 FIP 제도를 도입하여 발전사업자의 시장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상 PPA(Virtual PPA)와 같은 새로운 기업 조달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FIP 하에서 발전사업자는 일정 수준의 시장가격 연동 수입을 확보하므로, 기업과의 금융거래(차액정산 계약)를 통해 재생에너지 인증서만 거래하는 VPPA 형태도 실현될 수 있었다. 이는 발전사업자의 수익 안정성이 높아지고 기업은 비교적 낮은 프리미엄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인증을 받는 효과를 주어,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이 높은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서 특히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재정·세제 지원정책을 기업의 RE100 이행수단 촉진에 연계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미국이 운용해온 ITC/PTC 세액공제 제도는 기업들이 자가용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나 장기 PPA 참여를 결심하는 데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해왔다. 우리나라도 RE100 추가성이 높은 자가발전형 설비나 오프사이트(off-site) PPA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 세액공제나 보조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력 소비량이 많지만 자체 부지에 발전설비를 설치하기 어려운 산업 부문의 기업이 발전사와 오프사이트 PPA를 통해 신규 설비를 세울 경우, 투자비의 일부를 세제 혜택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세제 지원은 정부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기업의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유인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대규모 에너지다소비 업종의 참여를 끌어내 재생에너지 시장 저변을 확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 IRA처럼 세액공제에 국내 제조설비 사용 시 보너스 크레딧을 주거나, 세액공제 권리를 타 기관에 양도하여 현금화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는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산업의 공급망 육성과 일자리 창출에도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 방향이다. 또한 자가용 재생에너지 설비에서 생산된 전기의 환경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제도도 마련하고, 이를 거래 가능하도록 하면 기업들의 직접투자型 재생에너지 확대를 유도할 수 있다.

 

RE100 이행수단 추가성 확보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추가성 확보가 핵심 과제이다. 기업들의 RE100 달성이 국가 전체 재생에너지 증가분으로 이어지도록 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추가성 낮은 수단의 단계적 개선 또는 축소와 추가성 높은 수단의 우대가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녹색프리미엄이나 기존 REC 구매에 의존하는 현재 구조는 과도기적으로 불가피하더라도 장차 기업들이 신규 발전소와 직접 연계되는 PPA나 자기자본 투자를 통한 발전설비 확보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여기에는 세제혜택 부여, 금융지원, PPA 계약 표준화 등을 통한 진입장벽 완화가 포함될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자발적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RPS 의무량과 별도로 추가적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발급하거나, RPS 의무 이행분과 구분된 인증서 시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RE100 기업이 구매하는 REC가 RPS 의무이행에 활용되지 않은 신규 설비에서 나오도록 우선순위를 두는 한편, 기업 구매용 REC에도 동일한 가중치나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공정한 시장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의 역할 분담을 재정립하여 정책 간섭이나 충돌을 줄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인센티브와 주 정부의 RPS가 조화를 이루면서도, 때로는 지역마다 정책 속도 차이가 발생해 기업들이 대응 전략을 달리 세우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중앙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 지역 단위의 재생에너지 확산 계획, 그리고 기업들의 RE100 활동 간에 긴밀한 조율 메커니즘이 요구된다. 특히 전력망 연결, 입지규제, 인허가 등 실무 영역에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병목을 해소해주어야 기업의 자발적 투자가 힘을 받을 수 있다. 정부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민간 수요가 주도하는 시대에 맞게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현행 이행수단 포트폴리오의 효용을 평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RE100 이행수단의 다변화 전략을 수립하여 단계적으로 제도를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수단을 택하든 그린워싱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투명한 트래킹과 보고를 의무화하고,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담보되도록 운영하는 것이다.


맺음말

국내 기업들의 RE100 이행과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가로막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종합적 전환이 요구된다. 주요국 사례에서 보았듯이, 정부의 지원제도는 시장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진화해야 하며, 민간 부문의 혁신과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신호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쟁입찰형 FiP/CfD 도입, 세액공제와 보조금 등을 통한 투자 유인, 전력시장 구조 개선, 인증서 체계 정비, 송배전망 확충 등 여러 정책 수단을 패키지로 검토하여,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RE100)이 국가 에너지전환 목표와 정합될 수 있도록 제도 간 정책 일관성을 확보하고, 추가성 높은 이행수단을 중심으로 지원을 재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결국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전력조달→사용 인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기업들은 친환경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가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